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김영하의 "말하다"에서 비관적 현실주의.
    각종리뷰/마음이 즐거운 2018. 8. 3. 10:59
    728x90
    반응형

    김영하의 "말하다"로부터 갈무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비관입니다. 어떤 비관인가? 바로 비관적 현실주의입니다. 비관적으로 세상과 미래를 바라보되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기도 어렵고 가족도 바꾸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이다. 자기계발서들이 말하는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너 자신이라도 바꿔라, 저는 그것마저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바꾸는 것 역시 쉽지 않습니다. 그게 쉽다면 그런 책들이 그렇게 많이 팔릴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은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대책 없는 낙관을 버리고, 쉽게 바꿀 수 있다는 성급한 마음을 버리고, 냉정하고 비관적으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비관적 현실주의는 인상을 쓰고 침울하게 살아가자는게 아닙니다. 현실을 직시하되 그 안에서 최대한의 의미,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관적 현실주의에는 개인주의가 필수적입니다. .....(중략)......비관적 현실주의를 견지하려면 남과 다르게 사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의 개인으로 독자적으로 사고하는 일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비관적 현실주의에 두되, 삶의 윤리는 개인주의에 기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타인에게 동조될 때, 경계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개인주의를 저는 건강한 개인주의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건강한 개인주의란 타인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독립적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 안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싶습니다.


    개인적 즐거움은 얼핏 듣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막상 시작해보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즐거움을 천대하는 사회에서 성장했으니까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 수 있나?"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께 많이 듣던 소리입니다. 우리는 명분이나 도리같은 '타인 지향적 윤리'를 강조하는 문화에서 자랐습니다. 자기 즐거움을 희생하고라도 타인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남의 결혼식에 불려다니느라 피곤한 것이죠.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에게는 감성 근육이 없습니다. 감성 근육이라는 것은 뭘까요? 육체의 근육과 비교해보면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 몸에 근육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조금만 운동을 해도 피곤해지겠죠. 피곤해지면 짜증이 나겠죠. 다 포기하고 소파에 누워 낮잠이나 자고 싶어집니다. 감정은 독립된 게 아닙니다. 육체가 활동을 감당할 수 없을 때 감정은 부정적이 됩니다. 짜증과 화, 분노가 거기에서 시작됩니다. 마찬가지로 감성 근육이 없는 사람은 뭔가를 느끼기에 피곤해합니다. 소설을 읽어도 재미가 없습니다. 도대체 뭔 인물이 이렇게 많이 나오고 관계가 복잡해? 책을 집어던집니다. 줄거리가 간단한 할리우드 액션영화 아니면 바로 잠이 옵니다. 재미를 느낄 수 없으니까요.


    감성근육이 발달한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느끼면서도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다. 잘 느끼는 것은 왜 중요할까요? 자기 느낌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견에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와인을 전문적으로 테이스팅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별점을 보고 와인을 고를까요? 평생 음악을 사랑하고 들어온 사람들이 남의 평가만 듣고 콘서트 티켓을 살까요? 저만해도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살 때 독자 서평이나 리뷰를 전혀 보지 않습니다. 한 작가가 저에게 한 번이라도 깊은 즐거움을 주었다면 그 즐거움은 제 정신과 육체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것만 기억하면 됩니다. 그 작가가 새 작품을 냈다면 일단 사보는 겁니다. 만약 그 작품에 실망했다면 그것 역시 고스란히 남습니다. 자신만의 느낌의 데이터베이스가 충분한 사람은 타인의 의견에 쉽게 휘둘리지 않습니다. 참고는 하겠지만 의존하지는 않을 겁니다.


    세상에 대해서는 비관적 현실주의를 견지하면서도 윤리적으로 건강한 개인주의를 확고하게 담보하려면 단단한 내면이 필수적입니다. 남에게 침범당하지 않는 단단한 내면은 지식만으로는 구축되지 않습니다. 감각과 경험을 통해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지식만 있고 자기 느낌은 없는 사람, 자기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선 진정한 개인이라고 보기 힘들 겁니다. 우리 사회에는 자기 스스로 느끼기 보다는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내 감정은 감추고 다중의 의견을 살펴야 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바뀌어야겠죠.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 느끼는가, 뭘,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그것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가?"


    728x90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