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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상적인 졸업식 축사 - 세 개
    각종리뷰/마음이 즐거운 2018. 8. 2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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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과 졸업식 축사는 아니(었)지만,

    (정치외교학부 전공 사람들이 필력이 좋으시다! 부럽다!)

    그래도 현재까지 가장 인상적인 졸업식 축사를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도 남길 겸, 갈무리해 본다!


    다른 할 일도 많은데...

    역시 할 일 많을 때 하는 딴 짓이 가장 재밌고, 시간도 참 잘 간다!


    #1.

    졸업을 축하합니다. 대학시절이라는 골치 아프고 불안한 세월—미래에 대해 불안하고 자기자신에 대해 불안한 세월--을 견디어낸 여러분들을 축하합니다. 그런 불안하고 골치 아픈 여러분들을 참고 견디어낸 부모님과 선생님들 또한 축하합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졸업식을 마치고 떠나기 전에, 대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제 생각의 일단을 짧게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여러분들이 사회에 나가면 중요하게 될 두 가지—예쁘게 화장하는 법과 멋있게 옷 입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주겠습니다. 기초화장을 잘 하고, 비비 크림을 바르고, 색조화장을 잘 하고, 명품 백을 든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닙니다. 제가 들은 바에 따르면, 핵심은 크게 두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예쁘게 화장하는 법: 일 단계, 예뻐진다, 이 단계, 화장을 한다. 

    멋있게 옷 입는 법: 일 단계, 멋있어진다, 이 단계, 옷을 입는다.


    요컨대 기본이 되어 있으면 거기에 무엇을 하든지 잘 됩니다. 대학이란 그런 기본을 연마하는 장소이고, 대학시절은 그러한 기본은 닦는 시간입니다. 기본이 잘 되어 있다면, 사회에 나가서 화장을 하든, 옷을 입든, 일을 하든, 술을 마시든, 실연을 하든, 다 잘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시절에 닦은 그 기본은 평생토록 여러분들의 자산이 될 것입니다. 


    그 기본에 근거하여 앞으로 사회에서의 인생이 멋지게 펼쳐진다면 대학시절의 다른 부분들은 여러분들께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즉 여러분들의 인생이 앞으로 풍요로우면 풍요로울수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졸업이라는 껍데기는 여러분들의 생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이벤트로 남을 것입니다. 대학의 졸업장이라는 것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멋진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이 앞으로 별볼일 없으면, 여러분들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를 다닌 그 시절이 마치 대단한 것처럼 과장하게 될 것입니다. 허울 좋은 대학 간판에 의지하거나, 이른 나이에 동창회에 나와 과거의 추억에 안주하는 사람이 되지 말기 바랍니다. 대학시절은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한 기본으로서 그 소임을 다할 뿐, 소위 명문대 졸업장이 주는 간판과 우등상이 주는 허울과 명문학과 졸업생이라는 허세는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그런 것들에 의지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앞으로의 여러분들 장래가 다채롭고 풍요롭기를 바랍니다. 그 정도로 멋있는 인생을 살게 되면, 서울대 정치외교학부를 다녔다는 사실은 여러분 인생 전체로 보아 하나의 사소한 이벤트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멋있는 삶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바로 서울대 정치외교학부에서 연마한 기본일 것입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의 졸업을 축하합니다.


    서울대학교 정치학 전공 주임 김영민


    출처 : http://polisci.snu.ac.kr/bbs/view.php?id=kimym_etc&page=1&sn1=&divpage=1&sn=off&ss=on&sc=on&keyword=%C1%B9%BE%F7%BD%C4&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0



    #2.

    졸업을 축하합니다. 여러분들이 부럽습니다. 뭔가 귀중한 것들을 과감하게 소비한 이에 대해서는 부러운 마음이 듭니다. 실로 여러분들은 대학시절 동안 귀중한 것들을 가차없이 소비했습니다. 비싼 학자금이랄지, 젊음이라는 이름의 소중한 시간이랄지. 그처럼 귀중한 것을 소비해서 뭔가 이루어나가는 것도 멋있어 보이고, 심지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그 시간들을 낭비해버리는 경우에도, 부러웠습니다. 젊음같이 귀중한 것을 낭비해버리는 것은 그 나름 쾌감이 따르는 일입니다.


    어쨌거나 대학생활이라는 것이 그렇게 귀중한 자원을 소비하는 일이라면, 그에 대한 평가의 시간을 갖는 것이 당연합니다. 각자는 자기 식대로 고유하게 대학시절을 보냈을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평가는 여러분 개개인의 몫입니다.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다만 평가 기준에 대한 것입니다. 과연 어떤 기준으로 지나온 대학생활을 평가할 것인가? 대학졸업 후 얼마나 높은 연봉의 안정된 직장을 가지게 되었는가가 유일한 기준은 아닙니다. 중요한 평가의 기준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현실사회에서 타인과 사는 일의 고통과 영광을 얼마나 잘 겪을 마음의 준비, 즉 정치적 덕성 political virtue를 습득했느냐는 것입니다. 즉 얼마나 성숙한 정치 주체가 되었느냐 하는 것이, 정치외교학부 졸업생들이 염두에 둘만한 평가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온 대학생활에 대한 각자의 평가가 어떠한 것이든,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탈리아의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는, "삶이 진행되는 동안은 삶의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에 죽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즉 여러분들에게는 창창한 미래가 있고, 진정한 평가의 시간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찾아옵니다. 그러면 미래에 우리가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의 삶을 평가할 때 적용되어야 할 평가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 때 평가 기준은,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 얼마나 사회적 명예를 누렸느냐, 누가 오래 살았느냐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보다 근본적인 평가 기준은, 누가 좋은 인생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것이 좋은 이야기일까요? 좋은 이야기의 조건은 너무도 큰 주제라서 오늘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좋은 등장인물이 필요하겠지요. 그런데 부자가 많이 등장한다고 해서 좋은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으로만 점철된 이야기라고 꼭 좋은 이야기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실패담도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이야기를 위해서는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일련의 일들에 대한 망각도 필요합니다. 인생에서 일어난 일을 요령 있게 망각하고 기억할 때 좋은 이야기가 남겠지요. 아무 일도 기억나지 않는 삶은 물론 지루한 이야기겠지요. 그래서 용기와 도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졸업은 끝이 아니라 앞으로 남아 있는 그 큰 도전의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이제 막 그 큰 이야기의 첫 챕터를 탈고한 여러분의 졸업을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서울대학교 정치학 전공주임 김영민


    출처: http://polisci.snu.ac.kr/bbs/view.php?id=kimym_etc&page=1&sn1=&divpage=1&sn=off&ss=on&sc=on&keyword=%C1%B9%BE%F7%BD%C4&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51



    #3.

    졸업을 축하합니다. 딱히 축하받을 기분이 아닌 졸업생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돌아보면, 다짐과 달리 학교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게임을 너무 많이 했거나, 어떤 ‘덕질’에 과하게 몰두했거나, 부질없는 연애를 했거나 그조차도 못해서 아쉬운 사람이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당장 졸업식 다음 날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거나, 출근할 곳, 등교할 곳이 있기는 한데 확신이 서지 않아서 심란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을 축하하는 것은, 여러분이 특정한 결과를 얻어서가 아니라 수년에 걸쳐 어떤 중요한 활동, 말하자면 순간의 선택을 쌓아 나의 고유한 역사를 만드는 활동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이 활동은 어떻게 보면 인생의 주된 활동이고, 능력을 타고나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는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으며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대학 입학 전까지 연습의 기회가 충분하지 않아서, 대개 대학을 다니며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을 지나며 조금씩 경험을 축적합니다. 여러분이 졸업한다는 것은, 이처럼 값진 경험을 수만 시간이 넘게 쌓았다는 뜻이므로, 이를 축하합니다.


    경험도 좋지만 시행착오를 줄일 비법은 없겠느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조언할 처지는 아닙니다. 다만 참고가 되길 바라며 그동안 여러분에 대해 관찰한 바를 보고하고자 합니다.


    면담과 수업 시간에 살펴본바, 우리 학교 학생 상당수가 매사를 너무 오래 그리고 복잡하게 고민(overthink)하는 성향을 보입니다. 진로 결정이나 인연·절연과 같은 중대한 계기에서뿐 아니라 다음 학기에 어느 과목을 수강할 것이며 수강신청을 취소할 것인지와 같은 작은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우의 수를 빠짐없이 세밀하게 파고드느라고 고생하는, 선택의 결과뿐 아니라 그 과정마저 완벽해야 한다고 믿는 듯한 학생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이제 졸업을 계기로, 혹 이런 성향이 자기 파괴적인 완벽주의의 한 발현은 아닐지 자가진단을 해보는 것도 유용하지 않을까 합니다.


    여러분은 아마 어린 시절부터 놀라울 정도로 완벽함에 근접했을 것입니다. 수업을 하며, 그런 여러분의 모습에 감탄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조차도, 시도하는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이 사실은, 숱한 사람이 못해낸 일도 나만은 해낸 적이 많은 사람-여러분 같은 사람-일수록 받아들이기 어려우나 모쪼록 빨리 받아들일수록 좋습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불완전함과 실수를 받아들이지도 고려하지도 않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게 조금 수월해질 것입니다. 완벽함이 불가능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게 됐을 때, 대신 선택의 순간을 외면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아니면 전혀 엉뚱한 일에 열중하며 상황을 회피한 적이 있다면, 은연중에 이처럼 비현실적이고 비타협적인 완벽주의를 붙들고 있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그러한 완벽주의를 떨쳐내면,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원을 다닐 때, 학과 선생님이 논문 쓰기 워크숍을 열어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할 일은 논문을 쓸 수 있을지 걱정하는 게 아니라 논문을 쓰는 일입니다.” (오해를 막기 위해서였는지, 다음 말도 덧붙이더군요. “여러분이 논문을 쓸 수 있을지 판단하는 건 우리 교수들이 할 일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무척 잘합니다.”) 완벽주의를 떨쳐낸 여러분은 무슨 일이든, 그것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데보다는 그것을 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원하지도 않았던 일을 하는 대신, 부족하나마 하고자 했던 일에 조금씩 조예가 깊어질 것이고, 얼마 지나 돌아보면 “이 상황도 나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지 모를 일입니다.


    사실 어떤 일을 잘할 수 있을지, 그 일이 나에게 맞는지는 직접 겪어보고서야 알 수 있곤 합니다. 도움이 안 되는 완벽주의의 또 한 가지 측면은, 시행착오의 비효율성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령 로스쿨이 나에게 맞는 곳인지는 다녀봐야 온전히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전에 완벽한 선택을 할 수는 없습니다. 비법 얘기를 꺼내놓고서 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상황에서 왕도는 없습니다. 자기 이해는 무척 어렵고 선험적이지만은 않으며, 이해의 대상인 나 자신은, 내가 나를 찾아 헤매는 동안 그리고 그 헤맴의 결과로 계속해서 변해갑니다. 칠순을 넘긴 대학원 지도교수가 언젠가 제게 말해줬듯이,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 수수께끼입니다. 이 사실 역시 빨리 받아들이면 좋습니다. 그러면, 이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불확실성의 상황에서도 내가 원하는 나의 다음 행보가 무엇인지를 정해보는 훈련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지난 수년 동안 이런 훈련을 불가피하게 해왔습니다. 다만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정해진 답을 찾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고 뜻밖의 우여곡절에 주저앉기도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런 완벽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길 기원하며, 다시 한번 졸업을 축하합니다.


    출처: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8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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