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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18 Phantom Thread, 팬텀 스레드
    각종리뷰/눈과 귀가 함께 즐거운 2018. 3. 2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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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권력관계"에 관한 짧은 필름, Phantom Thread.



    사랑은 두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둘 사이의 힘이 적당히 균형을 이룰 때.. 잘 유지될 수 있다.

    어느 한 쪽으로 권력이 치우치게 되면, 그 사랑은 중심을 잃고 끝을 향해 추락하게 된다.


    이 영화의 극 초반부에 등장하는 조안나와 레이놀즈(남자 주인공)의 아침식사 씬에는

    이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주 인상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서늘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어느 순간부터 조안나는 레이놀즈의 관심을 갈구하고 있었고,

    그래서 둘 사이의 관계는 레이놀즈의 자비심에 의해서 간간히 유지되고 있었을 뿐이다.

    그말인 즉슨, 레이놀즈의 자비심이 끝나는 순간, 그 사랑은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은 내가 그에게 우리 사이의 미묘한 공기 변화에 관한 이메일을 쓰던 그 순간이 아니라...

    실은, 이메일을 쓸까 말까 고민하던 딱 그 순간부터 이미 우리 관계는 종지부를 향해 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에는 당연히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영화 극초반부의 조안나에 감정 투영이 많이 되어 참 씁쓸했더랬다.


    그렇게 레이놀즈는 조안나에 대한 자비를 거두고, 그녀와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리고 그의 새로운 뮤즈, 알마(여자 주인공)와의 관계를 시작한다.

    둘 사이의 보이지 않는 힘의 줄다리기도 함께...


    처음에는 무게중심이 레이놀즈에게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레이놀즈의 뮤즈가 되어 그의 세계에 입성한 알마는 그가 정해놓은 규칙을 철저히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아침식사 시간에 소리를 내어선 안되며, 그가 일을 시작하는 시각에 알마의 하루도 시작되었다. 설사 그 시각이 새벽 네 시라 할지라도. 그와 함께 일하는 동안에는 심지어 마음대로 앉을 수도 없다. 알마는 이야기한다. "오로지 나만이 그가 원하는 만큼 그렇게 오랜 시간 서 있을 수 있었다."고...


    처음에 이 규칙에 순응하며 지내는 듯 보였던 알마는.. 그러나 어느 순간 이런 일방적인 관계에 폭발하고 만다. 

    집 안의 모든 사람들을 내보내고 레이놀즈 만을 위한 저녁식사를 만들어 대접할 때, 결국 알마는 울부짖으며 말한다.

    "대체 여기서 내가 무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레이놀즈가 지금까지 해 온 사랑은 늘 레이놀즈에 무게 중심이 실려 있는,

    레이놀즈가 규칙을 정하고 상대방이 따르는 일방적인 관계였을 것이다.


    그러나 알마는 여기에 맞지 않는 사람이다.

    알마는 레이놀즈와 처음 만났을 때 레이놀즈가 "Straight as usual" 이라고 했을 때, "As usual"이라니, 무슨 말이에요?, "Straight forward"라는 뜻인가요?라고 되묻는 사람이고, "I am strong"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실은, "You are acting strong"일 뿐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후부터 알마는 자신이 만든 게임에 레이놀즈를 초대하기로 한다. 독버섯을 먹임으로써...






    굳이 독버섯이어야 했을까?

    "독"버섯은 일견 극단적이어보이지만, 어쩌면 레이놀즈가 그만큼 자기 성이 단단한 사람임을 보여주고, 그런 사람을 자신이 내건 규칙이 적용되는 게임에 초대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를 철저히 무력화시킬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독버섯이 알마가 레이놀즈를 무력화시킨... 결정적 이유는 아닐 것이다. 알마의 "독버섯"이 레이놀즈에게 무력함, 약함을 선물했지만 왜 굳이 그것이 "알마"의 독버섯이어야했을까?


    그건 알마 만이 그의 깊은 내면의 상처를 알고 치유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레이놀즈는 "알마" 앞에서만 무력해질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알마는 두 번의 의식을 통해서 레이놀즈 내면의 깊은 상처를 치유해준다.

    한 번은 레이놀즈의 드레스를 입을 자격이 없는 바바라의 드레스를 알마가 직접 벗겨내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사실 둘 사이에 힘의 균형이 조금씩 맞춰진다. 실제로, 이 순간은 레이놀즈가 알마에게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며 키스하는 때이기도 하다.

    다른 한 번은 알마의 독버섯을 먹고 레이놀즈가 쓰러지면서 자신이 만든 벨기에 공주의 웨딩 드레스를 훼손하는 순간이다.

    이 두 드레스는 사실 레이놀즈 어머니의 웨딩 드레스를 뜻한다. 

    자신을 놓고 재가해버린 어머니는, 그래서 그 이후로는 볼 수 없었던 어머니는 레이놀즈 자신이 만든 그 웨딩 드레스를 입을 자격이 없다. 

    그래서 이 두 번의 의식을 통해 레이놀즈는 어머니의 웨딩 드레스를 벗겨내고 그럼으로써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나 상실감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이 두 번의 의식은 알마를 통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니 알마는 레이놀즈에게 있어 특별한 사람이 된다. 자신의 깊은 내면의 상처를 매만져 준 사람. 그래서 그 이후 레이놀즈는 알마에게 청혼한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의 보이지 않는 줄(Phantom Thread)다리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알마가 레이놀즈의 깊은 상처를 치유해줬다고해서 레이놀즈가 무조건 알마의 규칙을 따라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둘은 게임을 재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레이놀즈는 또 한 번 알마의 독버섯을 먹는다.

    이번에는 알마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영화 초반부에서 둘이서 눈싸움을 하는 씬이 있다. 

    그 때는 알마가 이겼다.

    그러나 독버섯을 먹으며 알마의 눈을 맞추는 레이놀즈는 알마를 빤히 응시한다. 한 번의 눈깜빡거림 없이.

    그리고 알마는 천천히 눈을 깜빡거린다. 

    그러니 알마가 규칙을 내걸었다해도 이번에는 또 누가 이길지 모르는 게임이다. 

    그렇게 또, 둘 사이의 힘은 균형을 이루고, 둘 사이의 보이지 않는 Phantom Thread는 또 다시 힘을 얻어 팽팽해진다. 

    둘 사이의 사랑처럼.






    덧 1) 알마처럼 사랑하고 싶다.

    누군가의 깊은 내면의 상처를 알아채고 치유해줄 수 있는.

    그러면서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사랑이 아니라, 내 규칙도 적극적으로 내걸 수 있는 그런..


    덧 2) 이 영화를 일과 사랑의 분리, 혹은 일과 사랑의 합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덧 3), 영화 속 음악이 너무 좋다. 조니 그린우드 찬양합니다!


    덧 4), 같이 보러간 친구는 알마가 레이놀즈에게 "독버섯"을 먹이는 후반부 씬이 살짝 우스꽝스럽게 등장했다는 점에서

    결국엔 멀쩡해보이던 남자도 여자와 함께 미쳐가는 영화라는 평을 내놓았다 (:


    덧5)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다.. 그건... 내가 자막없이 영어로 봤기 때문에 놓친 부분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점이다.

    보는 내내, 대사가 참 집약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인 즉슨 분명 내가 잘 못 알아들었지만 멋진 대사들이 충분히 많을 것이란 거다...ㅠ.ㅠ 이건.. 외국에 살고 있는 설움이자, 원어민이 아닌 설움이고, 앞으로도 쭉 겪게 될 어쩔 수 없는 설움일 것이다... H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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