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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09 Shape of Water,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각종리뷰/눈과 귀가 함께 즐거운 2018. 3. 10.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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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연애는 즐겁고 편안한 대화이다.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상대와 나눴던 대화를 찬찬히 복기하게 되고, 또 그러면서 미소 짓게 되는...

    돌이켜보면 보통 그런 대화로부터 상대방에 대한 나의 호감이 시작되었고, 또 자연스레 연애로 이어지곤 했었던 것 같다.

    언제, 어디서든, 또 어떤 주제로도 이야기할 수 있는...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연애상대이자, 또 연애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하고 있는 요즘이지만...

    또 그래서 자주 슬퍼지지만...


    아무튼 그래서 "Shape of Water"를 보고 싶었다.

    기예므로 델 토로 감독의 전작, 판의 미로를 재밌게 봤고, 또 동진님이 별 네개 반을 준 터라 왠지 더 보고싶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 영화를 가장 보고 싶었던 이유는

    대화 하나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절절한 그 영화 속 사랑의 모습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은 말을 못하고, 그녀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Dough Jones는 다른 종이기 때문에 당연히 사람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

    그 탓에 둘은 내가 생각하는 연애의 필수요소인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없다.


    미국에 와서 외국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종종 느끼게 되는 갈증같은 것이 있다.

    대화를 할 때 내 영어가 짧아서... 혹은 그들이 사용하는 제스쳐같은 비언어적인 표현들이 어색해서... 내 말에 내 의도를, 내 감정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는 것이다.

    그럴 때면... 대화를 하면서도 뭔가 개운치 않고 찝찝한 느낌이 들곤 했다.


    인간 대 인간, 그리고 10년은 더 영어공부를 한 외국인과 미국인 사이에서의 대화도 이러한데..

    하물며 말을 하지 못하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다른 종 사이의 대화는 어떻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극중에서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사랑을 한다. 그것도 절절히.


    그 사랑이 절절해 보이는 것은 물론, 둘이 처한 극중 상황 탓일 것이다.

    기예므로 델 토로 감독은 늘 구체적이고 또 현실적인 시공간적 설정 속에서 때론 아름다운, 때론 아름다우면서 잔혹한 판타지를 그려내는데 이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도 냉전시대의 미국으로 매우 구체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여기에 극 중 여주인공과 사람이 아닌 이 다른 생명체가 처한 개인적인 상황까지 더해져 둘의 사랑은 더 절절해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화없이.. 그토록 아름다우면서도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는건 극중 상황 탓만은 아닐 것이다.


    가끔... "완벽한 타인"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나에 대해 수없이 단정짓고 평가하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혹은, 내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꼬리표들만으로 나에 대해 성급한 판단을 내리고는,

    그 색안경을 끼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때면...

    아무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와 대화해줄 수 있는 그런 상대가 너무나도 그리워져 씁쓸해지곤 했다.


    Elisa가 Dough Jones와 사랑에 빠지게된 것은... 아마 Dough Jones만이 Elisa에게 "완벽한 타인"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타"인"은 아니겠지만..)

    Dough Jones는 인간과는 다른 종이기 때문에, 그의 얼굴엔, 인간이라면 옅은 색이든, 짙은 색이든, 누구나 끼고 있는 그 색안경이 없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그녀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봐줄 수 있는 상대이고, 그 탓에 그 누구보다도 Elisa와 편견없는, "진짜" 소통을 할 수 있는 상대일 것이다. (실제로 영화에서 Elisa와 소통하는, 혹은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녀를 인간들 중에서는 가장 편견없이 대해줄 수 있는 Zelda와 Giles 뿐이다.) 그래서 Elisa는 Dough Jones와, 아무 말 없이도.. 그 누구와 보다도.. 깊이 교감한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이 깊은 교감을 그 어떤 설명보다도 아름답게 묘사하는.. 물방울 씬이 등장한다*.*)


    그러니까 결국은, "소통"이고, "교감"이다.

    그리고 그 "소통" 과 "교감"은 꼭 "대화"를 통해서만 이뤄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니, 꼭 "대화"가 "말"을 통해서만 이뤄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Shape of Water"처럼 무정형이고,

    상대방을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떠한 틀에 가두지 않을 때만 진정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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