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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학생활 단상 - 연애/외로움
    오늘하루감상/유학생활 단상 2018. 8. 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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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사과정 지원 당시, 추천서를 부탁드리기 위해 한 교수님의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 그 교수님께서 내게 한 질문이 있다.

    ㅇㅇ씨는 외로움을 많이 타요? 혼자 밥 잘 먹어요?

    당시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뜬금없는 질문이었기에 나는 당황하며 되물었다.

    갑자기 그건 왜요?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많은 이들이 유학생활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바로 "외로움"이라는 것이다.

     

    당시 나는 이미 "서울" 유학생활 5년차에 접어들고 있던 때라 혼밥하기, 혼술하기, 혼자 청소하기, 장보기, 빨래하기 등등 꽤나 무언가를 "혼자" 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고, 그래서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럼요!

     

     

    *

    나는 혼자 잘 논다.

    혼자 하루종일 있어도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한다.

    굳이 누군가와 나의 일상을 공유하지 않아도 되는,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의 소중함도 잘 안다.

     

    모처럼 약속 없는 주말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서 혼자 이것 저것 하다보면 시간이 참 잘 간다.

    요리하고, 청소하고, 밀린 예능 보고, 책 읽고, 글 쓰고, 음악 듣고, 인터넷 서핑하다보면 어느새 잘 시간이다.

     

    나는 혼자 잘 노는 것이, 혼자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 외로움을 잘 견딜줄 아는 능력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 교수님의 질문에 그렇게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 때는.

     

    비온 뒤, 해밀! 그리고 새더타워.

     

     

    *

    그러나 이것이 내 착각이었을 뿐임을 깨닫는 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국와서 2년 동안 안정적으로 잘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롱디가 어느 순간 갑자기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어느새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 1년의 시간은 내가 얼마나 적막, 허전함, 공허함, 그리고 외로움을 못 견뎌하는지, 매일같이 일깨워 주었다.
     
    그동안은 그냥 그럴 만한 충분한 사건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몰랐던 것이다.
    내가 외로움을 잘 견디는 사람인지, 아닌지.
     
    이 1년의 시간 동안 나는
    그동안 어쩌면 들키고 싶지 않아서, 내보이고 싶지 않아서,
    꾸깃 꾸깃 억지로 숨겨두었던 나의 어두운 면들과 많이 마주했다.
     
    디디고 선 곳에서 절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던 나는,
    사실 조그마한 충격에도 이리 휘청, 저리 휘청대다 결국엔 무너지고 마는 그런 사람이었고,
    꼭 쥐고서 절대 놓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도,
    내가 힘들 땐 너무도 쉽게 다 놓아버리고 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덕분에 내 자신에 대한 결벽은 많이 없어졌지만,
    너무도 짧은 시간 동안, 애써 외면해왔던 나의 어두운 일면들을 마주하고 또 받아들이는 일은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이런 모습들을 보고 또, 받아들이면서
    나는 자주 고통받았다.
     
     
    *
    그러니까, 평소의 혼자와,
    힘들 때, 무너져내릴 것만 같을 때의 혼자는 다른 것이다.
     
    평소의 혼자를 잘 견디고 즐길 줄 안다고 해서, 힘들 때의 혼자도 잘 견디는 것은 아니다.
     
    결국에는 혼자 이겨내고 극복해야 할 내 짐일지라도,
    이렇게 힘들 땐, 잠시동안만이라도 이 무거운 짐을 덜어놓을 곳이 필요하다.
     
    그런데
    모든... 익숙하고 편안한 것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 곳,
    이역만리 버클리에는 잠깐이라도 이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 놓고 기댈 곳이 충분치 않았다.
     
    그래서 유학생활이란 것이, 더 외로웠고, 힘들었다. (또 계속 그럴 예정이겠지...)

     

    *

    You are not alone, but!

     

    사실 이런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같은 싱글 박사과정 유학생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외로워하고 힘들어하고,

    평생 짝을 못 만나고 이대로 늙어 죽는 것은 아닐지 걱정한다.

     

    어떤 날은 만나서 이런 한탄만 하다가 헤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한편으론, 모든 화제와 관심사가 이 주제로 수렴하는 느낌이라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나 오늘 ㅇㅇ이라는 식당에서 ㅇㅇ 메뉴를 처음 시켜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더라!

    이러면 돌아오는 말이, 그 식당이나 그 메뉴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라 바로 이런 것이다.

    누구랑? 남자랑?

     

    혹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요즘 재밌는 전시회하더라. 나도 이번 주말에 가기로 했어.

    누구랑? 남자랑?

     

    이렇게 나의 모든 발언에 되돌아오는 반응이 똑같다.

    그 탓에 그 어떤 이야기도 하기 싫어질 때가 많다. 

     

    또 하나 내가 이별하고 알게된 것은

    사람들이 참 쓸데없이 남 걱정을 많이 해준다는 것이다.

     

    고학력의 나이 많은 여성은 결혼시장에서 인기가 없으니 얼른 결혼정보회사를 알아봐.

    너도 이제 서둘러야해.

    더 나아가서는... 

    미리 난자를 얼려둬.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렇게,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내 걱정을 참 많이도 해준다. 

     

    그런데 이렇게 상대방이 먼저 호들갑을 떨면 나도 그래야만할 것 같은 부담감이 생겨 괜시리 조급해지기도 하고,

    내가 언제부터 남들이 걱정하는 삶을 살게 되었나하는 쓸데없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앞에서는 웃어 넘길지 몰라도, 속으로는 상당히 불편하다.

     

    다른 좀 더 생산적인 대화를 하고 싶은데,

    종종 모든 대화가 이런 주제로 수렴해버리는 것 같아 사람들을 만나기 싫어질 때도 많다.

     

     

    *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이쁜 가정을 꾸리는 것은

    내가 오래 전부터 꿈꿔 온 것 중의 하나다.

     

    엄청 운 좋게도 나는 꽤나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래서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주는 안정감, 편안함이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는지 잘 안다.

     

    그렇기에 나도 언젠가 내 남편에게, 그리고 아이에게 이런 안정감, 편안함, 그리고 든든함을 주는 이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다.

     

    이 소박하고 평범한 줄로만 알았던 이 꿈이,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닌, 실은 엄청 이루기 힘든,

    어쩌면 축복받은 몇몇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꿈이라는 사실을 점점 깨닫고 있다.

     

    그러니!!!

    이렇게 잘 알고 있으니!!!

    부디.

    남 걱정은 그만 좀 해주시길.

     

    걱정해주는 고마운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이러나, 저러나 내가 해결해야할 문제고, (사실 이게 "문제"라고 명명해야하는 일인지도 잘 모르겠다)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니.

     

    나에 대한 불편한 관심, 살짝만 거두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소박한 바람이라도 들어주시길.

    비록 여기에다대고 이렇게 떠들어봤자 소용없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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