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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와 연구자, 연구자와 소설가오늘하루감상 2017. 10. 20. 10:22728x90반응형
최근에 김영하의 보다, 말하다, 읽다 산문 시리즈를 읽으면서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 소설가로서의 삶에 대해 많이 배우고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소설가라는 직업은 참 연구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영하는 말한다. 소설가라는 직업은 멀리서보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직업이라고.
소설가로서 하루종일 하는 일이라곤 책상 앞에 앉아서 읽고, 고민하고 쓰고 지웠다를 반복하는 것뿐이니 이보다 더 하품나오는 직업이 어디있겠느냐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연구자가 하는 일도 이와 별반 다를게 없다. (아, 물론 실험을 하는 연구자들은 좀 다를 수도 있겠다 싶다.)
요즘 내 삶을 돌이켜보면, 내가 하는 일이라곤 책상 앞에 앉아서 읽고, 고민하고, 생각하고, 썼다가 지웠다를 반복하는 것 뿐이다.
물론 중간, 중간에 학부생들에게 시달리는 Office Hour와 Section Teaching이 있어서 소설가보다는 좀 더 역동적인 삶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유명한 소설가들도 종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하고, 라디오 게스트로 나오기도 하며, 또 종종 강연을 하러 다기도 하니, 결국 그들과 내가 하는 일은 멀리서 보면 별반 다를바가 없는 것이다.
"등단"이라는 과정 역시 연구자의 데뷔과정과 다를 바가 없다. 자신이 쓴 소설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 위해서는 우선 소설가로서 자신의 이름을 알려야한다. 자신을 소설가로서 소개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전통적인 방법은 바로 "등단"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연구자에게 무슨 "등단"의 과정이 있어?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 연구자도 등단과 비슷한 방식으로 데뷔를 한다. 연구자에게 있어 등단은 바로 "출판(Publish)"이다. 소설가들이 신춘문예나 문예지에 자신이 쓴 소설을 "응모"하여 "당선"이 되면 "등단"을 하듯이, 연구자들도 저널에 자신이 한 연구를 "보내면(submit)" 에디터들이 그 중 잘 된 연구들을 "선정(accept)"하여 저널에 "출판(Publish)"을 해준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연구를 세상에 알릴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소설가가 고정독자층을 얻는 방식과 연구자가 고정 독자층을 얻는 방식 또한 매우 유사하다. 소설가들이 등단을 하고 발표한 소설들이 한 두번 정도 좋은 평가를 받고나면 그들은 고정 독자층을 얻게 된다. 이렇게 고정 독자층을 얻고나면 어떤 출판사를 통해 소설을 발표하건 간에, 새로 발표한 소설이 평론가들에게 어떠한 평을 얻건 간에 상관없이 고정 독자층들은 그 소설가의 이름 하나만 보고서도 망설임없이 지갑을 연다. 이와 마찬가지로 연구자가 좋은 저널, 즉, 소위 말하는 탑저널에 연구의 결과물을 몇 번 "출판"해서 어느 정도 명성을 얻고 나면, 출판하기 전 단계(Working Paper 단계)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가 연구를 시작하는 방식이(
사실 나는 아직 대학원생이기 때문에 내가 연구를 시작하는 방식이 어떠하다고 말을 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지는 잘 모르겠다. T.T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이것은 쪼렙이 연구를 시작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연구자마다 연구를 시작하는 방식, 혹은 연구를 대하는 방식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도 안다.) 김영하가 소설을 시작하는 방식과 별반 다를게 없다고 느꼈다. 김영하는 "말하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제 소설들은 이미 쓰인 다른 작품들에 대한 제 나름의 답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늘 오래된 이야기를 제 버전으로 다시 쓰는 데 흥미를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을 읽습니다."
내가 질문을 찾는 방식이나 내가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방식도 이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평소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 기존 연구들을 읽다가 혹은 평소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 세미나를 듣다가 '나라면..'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때가 바로 내 연구의 시발점이 된다.
'나라면 그 방법론을 다른 주제에 적용해보겠어.'라든지, '당신의 주장에 백퍼센트 동의하지 못하겠네요. 당신이 간과한 이 부분을 놓쳐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라든지, '나라면 그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을 하겠어요.'와 같은 생각이 들 때 내 연구가 시작되는 것이다. 내 나름대로 같은 질문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답변을 하는 것이다.
얼핏보면 논문(혹은 비문학)은 이성이라는 영역에, 소설은 감성이라는 영역에 속해 있어 이 둘 사이에는 전혀 교집합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사실 소설가처럼 연구자와 비슷한 직업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둘은 닮은 구석이 참 많다. 그 탓인지 "말하다"를 읽는 내내 (원래도 좋아했던 작가지만) 김영하라는 "사람"에 대해 더 매력을 느꼈다.
소설가와 연구자, 그리고 연구자와 소설가. 이 둘 사이의 묘한 동질감 탓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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